아랫집 누수도 제대로 못잡고 있다. 탐지 업체를 기억하는 것만 세군데 업체에 10번은 불러서 한거 같다. 누수와 누수탐지 관련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썰을 풀어보겠다.
아무튼 누수때문에 열받아서 혼자 이것저것 챙기고 있던 중에 보일러 분배기 밸브에서 물이 새는 것을 발견했다.

물이 새는 양은 얼마되지 않았다. 아주 찔끔새고 그게 엑셀 파이프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다 건조될 정도였다. 그래서 사실 그냥 둬도 아무 문제 없지만 누수 때문에 물에 노이로제가 걸린 나는 눈이 돌아가 이걸 해결해야된다 싶었다.

처음부터 셀프로 밸브를 고쳐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충분히 혼자서 교체할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블로그와 유튜브의 콘텐츠 탓이었을까. 이제와서는 남을 탓할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실 전문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집에 가장 중요한 공구인 토치가 있었던게 문제였을까.



신나서 혼자 수치를 잔뜩 재고 아침에 철물점을 가서 15mm 분배기용 나비 밸브를 살때까지 설비 전문가 빙의해서 스스로가 대견했다. 거기까지였다.
이 밸브를 교체하는 방법은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원리는 간단하다.
1. 보일러로 들어가는 직수관을 잠그고 보일러 콘센트를 뽑아 가동을 중단한다.
2. 퇴수구를 풀어 난방관의 물을 일부 뺀다.
3. 잠금을 풀어 엑셀파이프를 제거한다.
4. 밸브 상단을 토치로 가열하고 밸브를 분리한다.
5. 새밸브 나사선에 테프론 태이프를 감고 결합한다.
6. 엑셀파이프를 결합한다.
7. 직수관을 열고 보일러를 가동시켜 난방관의 에어를 제거한다.
8. 누수가 있는지 확인한다.
나는 3번 단계를 하는 동안 이사달이 났다.

정말 충격이었다. 힘을 세게 준것도 아니다. 잡아 당겼을때 살짝 강하게 붙어 있는 거 같아서 힘을 아주 조금 줘서 흔들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여러 영상에서는 모두 그렇게 했다. 그런데 내가 손을 대자마자 정말 쩍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금이 가고 그 금으로 물이 무슨 코미디 영화처럼 내 얼술로 쏟아졌다.
그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도대체 내가 이 삶에서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시련이 생기는 것인지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알고보니 엑셀파이프는 햇빛의 자외선을 받으면 경화되어 깨진다고 한다. 그래서 보온재로 감싸두거나 싱크대 밑으로 만들어 놓는건데 외부로 나와있던 우리집 파이프는 경화될대로 경화돼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너무 서럽지만 해결해야하니까 결국 사람을 불렀다.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처음부터 사람을 불렀다면 훨씬 빨리 문제가 해결됐을까. 파이프가 보온재로 감싸여있고 그래서 경화되지 않았다면 나는 셀프로 밸브를 교체할수 있었을까 많은 생각이 든다.
어디에서 이런 글을 봤다.
밸브가 하나 문제 생기면 전체가 문제 생기는 것이기때문에 미리 분배기 전체를 교체해주는 것이 속편하다고.
일당 몇만원 아끼려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고생인지 모르겠다. 세상에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